학회 소개
대한통증학회의 학회연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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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연혁

심 볼

정열을 상징하는 붉은 바탕 위에 4개의 원은 위로 퍼지는 물결 모양을 이루며, 힘찬 발전을 의미한다. 다른 의미로 통증을 의미하는 붉은 바탕에 4개의 원이 공통의 시작점에서 퍼지고 있는 모양은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나타내고, 바늘 모양의 날카로운 도형은 통증의 근원을 정확하게 관통함으로써 통증에 대한 정확하고 근원적인 치료를 시행한다는 의미이고, 바늘 모양은 통증의학에서 시행하는 중재적 치료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블록침을 상징한다. 또 하나의 의미로 4개의 원이 이루고 있는 모양은 Washington 대학의 Jonh D. Loeser 교수가 말하는 통증의 4가지 요소 즉 Nociception, Pain, Suffering, Pain Behavior를 뜻하며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바늘로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즉, 통증치료실에서 시행하는 신경블록에 의한 치료로서 환자를 통증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로 고

"대한통증학회" 로고의 글씨체는 정사각형의 굵은 정체로 하여 안정적이면서도 공신력과 신뢰감이 있는 단체임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제작 일화

위의 심볼과 로고는 대한통증학회 창립회기 섭외이사였던 청주 김태헌 원장(김태헌통증의학과, 통증의학과 개원의사회 초대회장)께서 청주대 예술대학 시각디자인학과에 의뢰하여 디자인 학과장 김태철 교수가 디자인 한 것으로, 대한통증학회의 무궁한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1992년 대한통증학회(회장 오흥근)에 기증한 것이다.
제작 당시 작품 디자인 구상을 위하여 통증 관련서적 5권을 요구하였으며, 약 6개월의 구상 제작기간이 소요되었고 당시 경비로 300만원의 실제경비가 들었다는 일화이다.

대한통증학회 창립 이전

대한통증학회 창립 이전의 초창기에는 주로 담당의사 자신의 제한된 지식과 기술을 이용한 일회성의 산발적 통증치료가 비체계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러한 경험은 비정례적인 모임에서 발표되기도 하였다. 본격적으로 통증을 학문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연세대 오흥근 교수(1954년, 1966년, 1973년 WHO마취과학센터 연수, 코벤하겐) 및 연세대 김완식 교수(1962년, 1969년 WHO 마취과학센터 연수, 코벤하겐)를 필두로 계속 해외 연수가 이어지고, 이를 통해 외국의 의료계와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통증에 관한 관심이 커지게 된 이후이다.

  • · 1974. 4~9    6개월 오사카시립대 박찬진(전남의대) 국소마취연수
  • · 1976. 3~8    6개월 군마대학 박찬진(전남의대) 통증연수
  • · 1982. 6~11   6개월 오사카시립대 김성년(가톨릭의대) 통증연수
  • · 1985. 3~5    3개월 군마대학 정창영(전남의대) 통증연수
  • · 1985. 6~8    3개월 미국 신시내티대 민병우(대구파티마) 통증연수

해외 연수를 통해 얻어진 정보와 기술을 바탕으로 1973년 연세의대 병원(오흥근 교수)과 한 양의대 병원(김완식 교수)에 처음으로 통증치료실이 개설되었고, 이어서 1981년 1월 19일에 전남의대 병원, 1981년 5월 18일 가톨릭의대 성바오로병원의 뇌신경통증연구소(최창락 교수, 신경외과), 1982년 9월 29일 부산 광혜병원(이용우 교수, 마취과)에 통증치료실이 개설되었다.

Pain Clinic 연구회의 창립 및 대한통증연구학회의 창립

대한통증학회는 Pain Clinic 연구회로부터 시작되었다. Pain Clinic 연구회는 1983년 9월 2일에 창립한 대한통증연구학회(세계통증연구학회 한국지부: IASP의 Korean chapter)에 자극을 받아 창립되었다. 대한통증연구학회는 통증관련 모든 기초, 임상의사 및 간호사, 기사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적 진료체계(Multidisciplinary Practice)를 지향하는 학회이다. 이 학회의 창립 당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은 몇몇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통증에 관하여 지식이나 임상경험이 별로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오흥근 교수(연세대)는 마취과 의사만으로 통증 전문학회를 창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오흥근 교수(연세의대), 박 욱 교수(순천향의대), 김성년 교수(가톨릭의대), 김인현 교수(마산 고려병원), 김인세 교수(부산대) 등 1984년 가을 순천향대학병원에서 모여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만으로 구성된 통증 학회를 만드는 첫 모임을 가졌다.

1985년 대한마취과 춘계학술대회(대구)에서 통증과 관련한 지식습득과 정보교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모은 것이 계기가 되어, 통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통증진료 분야를 개발하고자 뜻을 모은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이 1985년 7월 9일 18:30, 연세의대 외래 2층 회의실에서 첫 모임과 함께 제1차 학술대회를 가졌다. 첫 모임에서 오흥근 교수(연세의대)의 성상신경절 블록에 대한 강의가 있었고, 오흥근 교수의 사회로 보험수가에 관한 토의를 가졌다. 그 자리에 참가한 모든 분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았고, Pain Clinic 연구회 또는 학회를 만들자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우선 연구회로 시작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그 자리에서 Pain Clinic 연구회 창립총회를 갖고 초대 회장에 김인현 선생(마산 고려병원)을 추대하였다. 이어서 1986년 2월 21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도서관 회의실에서 제2차 학술대회를 가졌다. 이때 1년에 2회씩 Pain Clinic 연구회의 학술발표회를 통해 논문 발표를 시작하기로 하였고, 외국 연수 또는 외국 학회에 참석한 회원들을 통해 세계 각국의 통증진료에 관한 최근 동향을 공유하게 되었다.

대한통증학회의 창립

이어 제3차 학술대회가 1986년 9월 5일 순천향대학병원 대회의실에서 개최되었고, 개최된 총회에서 연구회라는 명칭보다는 학회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아 전 회원들의 총의에 의해 회칙을 통과시켜 대한통증학회로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오흥근 교수(연세의대; 2대, 3대, 4대)를 회장으로 추대하여, 통증진료 및 연구에 관한 문제를 학술적으로 광범위하게 다룰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대한통증연구학회와의 관계

1983년 9월 2일 대한통증연구학회(IASP, Korean chapter)가 창립되자 연세의대 마취과학교실 오흥근 교수가 마취과의사의 학회 참여에 대하여 우려를 하게 되었다. 이유인 즉 그 당시에는 아직 마취과 의사들의 통증크리닉에 대한 인식도 낮을 뿐만 아니라 통증에 대한 지식이나 임상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이미 통증분야에서 임상과 연구 경험이 있는 신경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등 다른 여러 과와 함께 참여할 경우 모든 면에서 뒤쳐져서 주도권을 잃고 들러리밖에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흥근 교수는 대한통증연구학회에 가입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마취과 의사들만으로 별도의 통증학회를 만들거나 그것이 안되면 우선 연구회라도 만들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임상경험도 쌓자는 의도로 Pain Clinic 연구회를 창립하고 이어서 대한통증학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대한통증연구학회 회장 김완식 교수는 마취과 회원이 학회에 참가하면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나간다면 주도권을 잃는다든가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지나친 기우라고 하며 많은 마취과 의사들의 참여를 바라고 있었다. 실제로 창립회원 30명 중 21명이 마취과 의사이며 회장, 부회장, 지구 평의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창립 회원과 관련 있는 마취과 의사를 제외한 일부 마취과 의사들은 두 교수의 눈치를 살피며 참여에 소극적인 경우도 있었다. 그 후 대한통증연구학회는 생각보다 활동이 적극적이지 못한데 반하여 오흥근 교수가 이끄는 대한통증학회는 날로 그 세가 커지고 활동도 활발하여 학회지도 먼저 발간하는 등의 발전을 하였다. 대한통증연구학회가 발전이 늦은 데에는 한국인의 속성상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부서가 연합한 학회라는 점에서 협조가 잘 안되었다는 점 외에도 참여한 마취과 의사가 대부분 지방에 계신 분들이 많았고, 마취과의 통증치료 영역에서는 서울지역이 지방보다 뒤처진 점도 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그 후에도 대한통증연구학회 활동에 마취과 의사들 다수가 참여했고, 또한 김완식 교수는 두 학회를 통합하려고 애썼다는 사실이 대한통증연구학회 잡지 “통증” 창간호의 인사말에 실려 있다.
대한통증연구학회가 창립한 후 10년째 되는 1993년 대한통증학회의 별도 창립을 주도했던 오흥근 교수가 김완식 교수(초대~3대: 1983~1989년)와 충남의대 최세진 교수(4대~5대: 1989~1993년)에 이어 제6대 대한통증연구학회 회장이 되었다.

대한통증학회 창립 이후

1988년 12월 22일 대한통증학회는 대한의학회 제4차 이사회에서 정식으로 준회원 인준을 받았고, 2001년 6월 14일 정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각 지역의 통증 모임인 지회는 1997년 서울(초대회장: 이상철)을 시작으로, 1999년 대구경북(초대회장: 홍정길), 2001년 부울경(초대회장: 김해규), 중부(초대회장:김찬), 및 충청(초대회장: 김태헌), 그리고 2002년 호남(초대회장:이철 승) 등 총 6개가 대한통증학회 산하 단체로서 창립되었다.

1987년 5월 9일 대한통증학회로서 주최한 첫 번째 통증학술대회(강남성모병원)에서 가진 총회에서 지금까지 "Pain Clinic 연구회"가 주최하였던 세 번의 학술대회를 인정하여, '제4차 대한통증학회 학술대회'로 하기로 하였다. 대한통증학회 학술대회는 원칙적으로 한 번은 서울에서, 한 번은 지방에서 한 해에 정기적으로 두 번의 춘 -추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01년 제33차 학술대회는 대한통증학회가 대한마취과학회와 공동으로 주관한 제6차 아세아오세아니아 부위마취학회(AOSRA) 학술대회로 대신하였고, 2008년 제46차 학술대회는 대한통증학회가 처음으로 단독 주관한 국제학술대회인 제13차 세계통증전문의학술대회(13th International Pain Clinic Congress, WSPC)와 합동하여 4일간 개최되었다. 2016년 제62차 학술대회는 대한통증학회가 처음으로 창설하는 국제학술대회인 제1차 국제척추통증학회(The International Congress of Spinal Pain, ICSP)와 함께 개최하였다.

1987년 11월 제5차 학술대회부터 연수교육 강좌가 시작되었으나, 1996년 11월 제23차 학술대회가 토, 일 양일간 진행 되면서부터 일요일 하루를 연수교육 강좌로 할당하였다. 이로써 공식적인 제1차 연수교육이 시작되었다. 2003년 5월 제 36차 학술대회(부산 BEXCO)부터 시민강좌를 시행하여 일반인들에게 통증을 이해시키고 마취통증의학과와 마취통증의학 전문의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학술대회 외에도 증식치료 연수강좌, TPI 연수강좌, IMS 연수 강좌, 약물치료 연수강좌, 카데바 워크숍, 초음파 워크숍, 동물실험 워크숍, 강의질관리 워크숍 등의 다양하고 활발한 학술활동을 하고 있다.

1988년 6월 25일 제6차 학술대회(청주관광호텔)에 대한통증학회지 창간호(제1권 제1호 논문 20편)를 발간하고 이 후부터 연 2회 학회지를 발간하였다. 대한통증학회지는 2004년 12월에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학술지로 선정되었으며, 2009년부터는 제호를 "The Korean Journal of Pain"으로 변경하면서 영문으로 발간하였고, 2008년부터 연 3회, 다시 2010년부터 연 4회로 증편 발간하고 있다. 2000년 학회 웹사이트를 구축한 이후 2009년에 영문 홈페이지와 학회지 홈페이지도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1992년 11월 21일 총회에서 통증의학 교과서를 만들기로 결의하고 편찬위원장으로 오흥근을 추대하였다. 그 후 편 찬위원회(위원: 김성년, 김인세, 서재현, 윤덕미, 전재규, 정창영, 최 훈)가 구성되고 집필자 선정 및 수 차례의 교정 등 2 년 6개월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1995년 4월 15일에 대한통증학회 교과서인 "통증의학" 초판이 발행되었다. 급변하는 학문의 발전에 발맞추어 2000년 개정판(위원장: 최 훈), 2005년에 3판(위원장: 윤덕미), 그리고 2013년에 제 4판(위원장: 이두익)을 편찬하여 모든 통증 의료인들을 위한 교과서로서 인정받았으며, 이후 개정된 마취통증의학 교과서 편찬 에서도 통증영역의 주요 참고서 역할을 하였다. 이외에도 대한통증학회는 다양한 종류의 치료지침이나 가이드라인, 번역서, 홍보 책자들을 발행하여 통증의학 발전에 노력하고 있으며, 책자 발간 이외에도 대국민 홍보 활동으로 통증 홍보대사를 위촉, 포스터를 제작, "통증의 날" 제정, 공익 홍보 캠페인 등을 진행하여 통증의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1994년 3월 18일 통증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여 유능한 임상의를 양성하기 위하여 "인정의" 제도 심의위원회를 구성(위원장: 전재규, 위원: 김인세, 정창영, 최훈, 김태헌, 박찬진, 김성년, 서재현)하여 인정의 배출을 위한 규정 및 서식 등 인정의 제도를 마련하고 인정의 배출 준비에 노력하였다. 이미 실사중인 일본의 제도와 내과의분과전문의 제도를 상당부분 채용하여 만들었다. 인정의 제도는 2004년에 "세부전문의"로 변경되고 2008년에 "고위자과정"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유지되고 있다.

학회 창립 10년을 맞이하는 1995년 1월 15일(회장 전재규, 총무 서재현) "행림의보" 창간호가 발행되어, 학회 및 회원의 동정뿐만 아니라 국내외 통증치료 현황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제공하였다. 1998년부터는 발행인을 회장으로 편집인을 홍보이사로 하고 제호도 "대한통증학회소식지"로 바꾸었다.

1988년 8월 김태헌 회원이 개원한 이후 개원회원 수는 1076명(2015년 11월)으로 대폭 늘어났다. 개원회원들은 1995년에 대한마취과개원의협의회(초대회장: 김태헌)를 창립한 이후 2002년에 대한마취통증의학과개원의협의회, 2009년에는 대한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매년 봄, 가을 2회에 걸쳐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회원 소식지인 "통증의사들"을 매년 발간하여 통증의학의 발전과 후진양성은 물론, 환자들의 건강과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산업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대한통증학회는 창립 이후부터 적극적인 학술, 교육, 홍보 활동 등을 통해 회원들의 권익은 물론, 통증의학 및 의료산업 발전과 국민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